소설 나라

묵은 빚을 갚으러 다녀왔습니다.

然山 2010. 1. 24. 22:33

나는 참 행운아입니다. 

글로써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지방지 문예지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아직까지 글장이 흉내에 그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소설)에 대한 꿈을 안고 있지요.

우리 고장은 참으로 많은 문인들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과 함께할 기회를 적잖이 얻습니다. 그래서 나는 참 행운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고(故) 이청준 선생님은 고향에 내려오시면 하찮은, 아주 하찮은 저에게도 연락하시어 함께 술자리 해주시고, 새롭게 발간한 신작품집 주시고,낚시배에도 동행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불러주시어 참으로 영광이었지요.

그러다가 선생님의 고향방문이 뜸해진다 싶어, 선생님과 아주 가까운 분을 통해 들었는 데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는......

그때는 언론에도, 문학계에도 선생님의 근황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지요. 결국 언론에 알려지고 유명을 달리(2008년 7월 31일)하셨고요.....

당시 내가 속해있던 문학회의 부탁으로 선생님을 모신 운구차량을 장흥읍에서 회진면 진목리  고향까지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마을회관 앞에는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차일 안에는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생가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현재 형수님이 살고 계신 마을의 뒷동산에 마련된 묘소로 모시는 데, 나는 슬픔이 앞서 함께할 수 없더군요.

나는 이청준 선생님을 보내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에, 다음에 지금보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뵙겠다는 약속만 남겼지요.

그 약속은 항상 나에게 빚으로 남았습니다. 그 빚을 이제는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을 나섰습니다. 가족 모두 함께......

 

    이청준 선생님의 생가

 

 

 

 

 

 

 

생가의 마당가에 세워진 안내판 - 

하늘과 땅이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의 소설이오

 

생가의 내부 - 이청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의 내부 - 영화, 그림으로 승화된 작품과 관련된 림플렛 등과 고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 마당가의 장독대

 

 

그 분이 태어난 집, 그 집에서 그 분이 들려주던 이야기들, 그 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참으로 언변이 없으시고 말조차 느릿하셨던, 그러나 가끔 섞는 유머...... 이제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생가에서 약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천년학'영화 촬영지로 향했습니다.

선학동 표지석이 늠름합니다. 이 표지석 뒷편의 아트막한 산이 바로 선학동에 비친 학입니다. 산봉우리 하나 솟아있고, 봉우리 양쪽은 작은 계곡이어서 마치 학 한 마리 모습과 흡사하지요.

아마 늦가을쯤, 해가 얕게 떠올랐다가 질 때면 이 산에 걸릴 것이고, 그 산그림자는 바다에 비출 것이고, 그 바다에 비친 산그림자의  모습은 영낙없이 한 마리의 학이 비상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천년학 세트장

 천년학 세트장

 

 

 

 

천년학 세트장 바다는 썰물이서 갯벌이 드러나 있더군요. 바다속에도 물길이 있다더니 바다로 뻗어있는 길이 선명했고요. 차를 돌려 이청준 선생님의 형수님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어느 해 추석 무렵에, 형수님 댁의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송편과 꼬막, 나물, 각종 나물과 전(煎)과 고기가 가득한 술상을 놓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오롯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도 선생님은 기분좋게 취하셨고 여느 때처럼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지요.

선생님을 모시던 날, 길가에서 뒷동산만 바라보고 함께하지 못한 까닭으로 선생님의 묘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여러곳에 산재해 있는 묘소들 중에서 어느 묘가 선생님이 누우신 곳인지...... 비석 하나 서있지 않아 가늠하기 힘들어 마을로 내려와 동네분들에게 물어보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술 한잔 올리고, 가족 모두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 좋아했던 담배는 차마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하얀 머리가 유난히 빛났던 선생님은 이제사 찾아온 나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아마 언제나처럼 조용한 목소리, 어눌한 말투로 한 마디 들려주시면 좋으련만......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지 1년 6개월 만에 찾아뵈었습니다. 나의 마음 속의 커다란 짐 하나 놓으러 다녀왔습니다.

마음의 빚을 갚으러 선생님이 누워 계신 곳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곳은 멀리 넓은 들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 곳.

사진에서 손이 가르키는 곳까지는 예전에는 바다였습니다. 간척지를 막아 지금은 농토가 되었고, 길이 되었지요. 바다와 들이 멀리까지 보이는 동산, 고향에 누워계시는 선생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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