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세상사람 이야기

인형의 나라

然山 2012. 6. 18. 23:27

내가 좋아하는 형은 참 어려운 일을 한다.

페인트를 칠한 것이 원래 본직업이다. 몇 십층의 아파트 벽면을 나이론 끈에 몸을 의지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은 오금이 저릴만큼 아찔하다.

 

 

근데, 못하는 일이 없어서 용접, 보일러, 배관, 목공, 섀시.... 누구든 부르면 달려가,남들이 돈벌이가 안되니 포기한 일, 힘들어서 포기한, 위험해서 포기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만족스럽게 일을 매조지해준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베푼다고 생각하며 자재비와 약간의 수고비만 받는 정도다. 그러니 항상 일이 넘친다. 일손이 부족해 늘 걱정스러워한다.

 

게다가, 종교생활을 하는지라, 봉사하는 시간도 수월찮이 많다.

어제는 예초기를 매고, 오늘은 망치를 들고 자신이 다니는 성당을 깔끔하게 관리한다. 그뿐인가, 그 성당을 다니는 교우들의 사소한 부탁까지 해결하느라 금전과 시간을 투자한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형의 곱디고운 심성에 난 늘 감동을 받고 존경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해서, 난, 특별히 약속이나 해결해야할 일이 없는 토요일이면 그 형의 일을 도와준다.

순수한 마음으로 형의 일을 돕고나면 나의 마음은 헬륨을 잔뜩 집어넣은 풍선처럼 가볍다. 나에게서 맡아지는 땀냄새가 좋다. 뿌듯해진다.

처음엔 알록달록 페인트가 묻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근데, 내가 죄지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땀을 흘린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부끄러움은 햇살을 받은 눈처럼 사라졌다.

 

 

그 형의 사무실에는 그 형의 심성을 대변해주는 인형들이 즐비하다.

컨테이너에 꾸민 사무실은 협소하지만 인형들이 나를 반기다.

 

수 많은 인형들은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인형들이 단순한 인형이 아니고, 웬지 형의 수호신 같이 느껴진다. 인형들이 환히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듯 하다.

사람 좋아하는 형의 마음이 담긴 이웃으로 느껴진다. 손 내밀어 악수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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