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세상사람 이야기

대보름, 그리고 쥐불놀이

然山 2010. 3. 4. 21:40

 

 

우리나라 전통민속놀이는 참 다양하다. 그 다양성은 문화의 다양성을 뜻한다.

그 중에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이면 부럼을 깨물고, 오곡밥을 먹으며, 겨우내 날렸던 연(鳶)을 줄을 끊어 멀리 날려보낸다. 귀밝이 술을 마시고, 지신밟기, 마당에 불을 피워놓고 나이만큼 불을 뛰어넘는다. 땅콩, 호도, 콩 등의 딱딱한 곡식을 깨무는 부럼은 치아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고, 연줄을 끊어 날려보내는 것은 봄이 다가와 바람의 세기가 약해져 연을 띄우기에 적당하지 않음도 있지만, 액운을 멀리 날려버린다는 뜻을 갖는다. 불을 넘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의 기운을 닮고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다.

보름날의 놀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쥐불놀이라 여겨진다.

쥐불놀이는 농경사회를 기반한 우리나라에서 논두렁을 태우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농사철을 맞이하여 논두렁의 풒섶에 기생해 있을 기생충을 불로 박멸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이것이 점차 동네 어귀에 나무를 쌓아 불을 붙여 마을을 훤히 밝히고 농악놀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즐기는 행사로 발전된 것이다.

쥐불놀이가 단순히 음주가무의 즐김의 놀이, 문화로 끝난 것이 아니라, 기원의 성격을 포함했다. 한 해의 농사가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행사, 농부들이 탈없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햇빛과 바람과 물이 적당하기를 신(神)에게 기원했던 것이다.

쥐불놀이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였다. 논두렁의 병충해를 불로 태워버리고, 논두렁에 살고있는 쥐떼를 뜨거운 불과 연기로 쫒아내려는 의미로 시작된 것이 바로 쥐불놀이다.

 

지금은 쥐불놀이가 장작더미를 쌓고, 대나무를 넣어 불을 붙이는 행사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나무를 넣는 것은 불에 대나무가 타면서 큰 소리로 터지는 데, 그 소리에 잡귀와 액운이 도망간다는 의미와, 도망가기를 바라는 심리가 깔려있다.

내가 살고있는 고장에서는 해마다 쥐불놀이를 펼친다. 탐진강 너른 강가에 보름 전날 밤이면 차일이 쳐지고 농악소리가 울려 퍼지면 연을 날리고, 팽이를 돌리고, 투호를 던지고, 제기를 찬다. 가훈을 써주는 어르신이 계시고, 준비된 종이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소망을 적어 붙인다.

 

돼지머리와 먹걸리로 고사를 지내고, 이윽고 불을 붙이면 장작더미의 겉을 두른 이엉이 활활 타오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환호를 지르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으기도 한다. 장작불에 모두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다. 한쪽에서는 김(海苔)에 싼 오곡찰밥을 나눠주고, 땅콩도 나눠준다. 어른들은 돼지머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즐긴다. 두어 시간이 지나 쥐불이 사그라질 때쯤이면 호일로 싼 고구마를 숯불에 던져 놓고 철사줄에 묶은 깡통에 숯을 담아 돌린다. 아이들은 신나고, 어른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사실, 쥐불놀이에서 깡통을 돌리는 일은 우리 고유의 놀이가 아니다. 쉽게말하면 통조림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이 한국전쟁 무렵이었으니 그 이후에 깡통을 돌리는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전통은 빗자루에 불을 붙여 돌리는 것이다.

마당의 개똥을 비롯해서 더러운 것들을 쓸었던 빗자루를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초봄에 불을 태워 병균을 없애려는 우리 조상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는 데 편리함을 추구하느라 깡통으로 바뀐 것이다.

고구마를 나눠 먹느라 사람마다 입이 새까매진다.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웃는다. 참 유쾌한 웃음이다. 준비하고 있던 소방차가 쥐불에 물을 뿌리면 하늘에 밝은 달만이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굽어보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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