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栗)을 거두며
김 형 종
하늘이 웃어 좋은 날
시간을 견디어 야무진 밤을 딴다
폭풍우에 굳어진 가시
넉넉한 햇살 먹어 알몸을 내놓고
생채기 주던 바람에 몸뚱이 지켰나니
가시에 찔려도 오히려 부럽구나
작은 바람에 흔들려 온 나는,
나를 지켜주는 날카로운 손톱없어
네가 부럽다, 부끄럽게 부럽다
밤은 힘으로 따는 게 아니어서
꼭지를 겨냥한 느릿한 아버지의 장대에
기운찬 나의 장대짓보다 쉽게
땅으로 떨어지는 밤송이들
아버지는 굵기로 밤을 고르는 게 아니라고
왕밤도 벌레에 먹힌 놈은
온전한 생명이 아니어서
싹을 틔우지 못한다고
굵은 밤알은 벌레가 먼저 알아본다고
봄날 싹을 틔울 작은 밤알이라도
건실한 가지 골라 접목하면
토실한 밤알을 맺으리라 얘기한다
하늘이 웃어 따스한 날
밤을 거두는 건
밤통에 숨은 벌레들 나들이하면
버레 먹힌 밤톨도 걱정없이
일용할 수 있음을
아버지는 이마에 맺힌 땀으로 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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