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승대님의 작품
http://kr.blog.yahoo.com/doran0098/3164
나름, 부채를 몇 개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채들은 한국화를 그리는 분들께 선물을 받은것 입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몸을 식히는, 시원하게 만드는 물건이지요. 그것이 부채의 사용목적이지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만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선풍기와 에어컨이 흔해진 세상이어서 부채의 효용가치는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채를 사용한 것은 최소한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후백제를 세웠던 견훤이 사용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합니다.
여하튼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역할보다 풍류와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지체 높은 양반들은 부채를 천천히 흔들며 시(時調)를 읊었고, 가마를 타고 행차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권위와 더불어 여유를 뜻하는 일이었지요.
한국화가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님의 작품
http://blog.daum.net/kimsun7355/16906630
아무리 천민일지라도 혼인식을 올릴 때면 사모관대를 착용하고 부채를 손에 쥐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모관대는 모자와, 혁대, 신발까지를 포함하는 데, 벼슬들이 입는 관복(官服)이어서 평민들이 입어서는 안되는 옷이지만 혼례식 때만은 허용하였습니다. 그 사모관대는 최하위 직급(9품)의 관리가 입던 관복이었지요. 이렇듯 권위를 상징하는 관복을 착용함에 있어서 신랑이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리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풍류를 즐기는 데는 부채가 필수품이었습니다.
소리꾼이 흥을 돋구기 위해서 쥐고있던 부채로 손바닥을 때리며 박자를 맞추고, 간혹 부채를 확 펼쳐 극적인 효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춤사위를 펼치면서도 부채를 펼쳐 시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면 청중들은 추임새로 화답을 보내고요.
또한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로 하사하기도 했답니다.
한국화가 이송(二松) 김선두(金善斗)님의 작품
http://navercast.naver.com/korean/artist/1105
부채는 전주가 유명하지요. 임금께 진상까지 했으니까요.
부채를 만드려면 우선 좋은 대나무를 골라야겠지요. 잘 말려서 부채살로 다듬고..... 손잡이 부분은 물소뿔이나 소뿔을 붙이는 데 대나무보다 튼튼하기 때문이지만 외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추구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바깥은 매듭이 많을수록 좋은 재료지요. 내가 본 것은 18마디로 이뤄진 부채를 보았고, 내가 소유한 부채는 13~14마디입니다. 부채살에는 박쥐문양을 넣는 데 그 이유는 박쥐의 한자가 중국 발음으로 복(福)과 같기 때문에 문양으로 사용하여 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답니다. 부채살이 완성되면 질좋은 한지나, 비단을 붙이고 글씨(사자성어나 선인들의 금언 등)를쓰거나 그림을 그려 넣어 마무리합니다.
한국화가 계산(谿山) 장찬홍(張贊洪)님의 작품
http://blog.daum.net/ruatks/18276666
맨 위의 작품은 이승대라는 젊은 화가의 작품입니다.
그 다음이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 님의 작품입니다.
세번 째가 이송(二松) 김선두(金善斗)님의 작품인 데, 소천 선생님과 이송 선생님은 부자(父子)지간입니다.
소천 선생님은 시(詩) 화(畵) 서(書)에 뛰어난 분이고, 이송 선생님은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그림을 대역으로 그리신 분입니다.
마지막이 계산(谿山) 장찬홍(張贊洪)선생의 작품입니다. 계산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께 사사를 받은 분입니다.
부채는 단순히 부채가 아닌, 멋이고 풍류고 여유이며 우리의 아름다운 유산(遺産)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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