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라

회고....

然山 2008. 8. 4. 12:10
장편 ‘당신들의 천국’을 쓰고 평생 ‘소록도 신사’가 된 이청준은 소록도를 격리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을 용서한다. 그곳에는 스러져 간 사람의 얼굴을 담은 듯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아 평생을 소록도에서 봉사해온 한 여성이 이청준에게 따진다. “선생님이 제 젊음을 빼앗아 갔으니 어떻게 책임지실래요?” 작가에게는 이만저만 큰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글 쓰는 이의 두려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사 출신인 그녀를 몇 번 만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는 노력도 했으나 영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그렁저렁 30년이 흐른 어느해 늦가을 문득 소록도를 찾으니 그녀는 에티오피아 난민촌으로 귀환의 기약도 없이 의료봉사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남겼음직한 한마디가 심금을 흔든다. “이 섬만 해도 제 삶이 꽃 피기에는 너무 호사스러운 땅인 것 같아서요.”

독자는 이청준의 소설보다 오히려 이청준의 체험 이야기를 들을 때 그의 진한 글냄새를 맡는다. 본인도 어깨에 힘을 빼고 쓰는 글이어서 편안하고, 독자도 방바닥을 뒹굴며 읽을 수 있다. 다만 눈알이 뻑뻑해지는 감동이 밀려오더라도 그의 책임은 아니다. 소설가가 쓴 실화(實話)일 뿐이니까, 라고만 해둔다.

게다가 이청준은 음란하기까지 하다. 이 무슨 책임 못질 해괴한 소리냐 하겠지만, “문학과 예술은 대개 성과 성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고, 좋은 작품이란 성욕망의 순화와 해방의 과정에서 얻게 된 산물”이라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다 보니 이청준의 글에는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거슬러 오르며 성욕망을 간지럽히는 천연덕스러움이 있다. 엊그제 소개했지만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 아멜리 노통이 쓴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83)가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이청준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깨진 유물 한 점을 소개하면서 “깨어진 것이 완형(完形)”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또한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도굴꾼조차 버리고 간 토기는 사실은 신라 시대에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넣어준 부장물의 하나로 원래부터 깨서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물건을 구별짓는 방법이었다. 깨어진 것이 그릇 원래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이청준의 글은, 개인의 삶도 인류의 역사도 상처와, 상처의 내력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따지고 보면 상처가 완형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퍼옴)